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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의 오답노트/삼국지

삼국지 인물 실제 일대기, 상산 조자룡

by ボス 2021. 2. 22.

역사에 기록된 조자룡의 실제 일대기

삼국지 내에서 유일하게 고평가 되고 있는 인물 중, 깎아내리려는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흠잡을 데 없는 유일한 인물이 있죠. 바로 이름부터 구름 운, 그리고 자룡... 남자라면 이름부터 반하는 촉나라의 로망, 오호대장군의 조운.

저는 역사 속의 인물을 알아가는 것에 있어서, 이름이 주는 효과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만남에서 첫인상으로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해버리는 것처럼, 역사 속 인물과의 첫 만남은 이름으로 시작되니까요.

 

 

아무리 위대했던 인물이라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흠집을 내려고 하면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실제로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인물인데, 소설 속의 화려함 때문에 과대평가가 되었다."라던지, 그래서 "실제 역사서를 들여다보면, 전부 거품이다."와 같은 말이 많이 보이는 조운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요?

 

 

공손찬의 휘하로 나아가다.

조운은 본래 공손찬의 세력에 속했는데, 공손촌이 유비에게 전해를 도와 원소를 막게 하니, 조운이 따라다니며 유비를 위해 기병을 지휘했다. <조운 전>

조자룡-출신지-현재-위치
출신지

조운의 자(字)는 자룡(子龍)이고, 현재 허베이성 쪽에 위치한 당시 기주 상산 군 진정현 사람으로, 신장이 8척에 용모가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운은 처음에 자신을 따르는 관리와 병사들을 이끌고 공손찬의 밑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당시 대세 세력으로 자리 잡은 원소가 아니라 공손찬에게로 가는 선택이었습니다. 역시 이 선택은 공손찬 본인조차도 어이가 없었는지, 기뻐하면서도 놀리듯 말했다고 해요.

 

당시 원소가 기주목을 칭하여 공손찬은 기주인들이 원소를 따르는 것을 심히 우려하였으니 조운이 귀부해 온 것에 기뻐하여 조운을 놀리며 말했다.
"듣기로 기주 사람들은 모두 원소 밑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던데, 그대는 어찌 홀로 정신을 못 차리고 대세를 거스르려 하시오?"

조운이 대답했다.

"천하가 흉흉하여 누가 옳은지 알 수 없으나 백성들이 거꾸로 매달리는 것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여, 논의해 본 결과 어진 정치가 있는 곳을 따르기로 한 것이니, 원공(원소)을 소홀히 하며, (공손찬을) 사사로이 따르자는 것은 아닙니다." <조운 별전>

 

아마 그의 올곧은 성격으로 봤을 때, 비겁해 보일 수 있는 책략으로 기주를 차지한 원소보다는 공손찬이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아요.
조운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인물이었고, 그렇게 하더라도 따르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서 그의  인품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그 성품에 걸맞게 쓸데없이 적을 만들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는 처세가 돋보이네요.

 

마침 공손찬과 어린 시절 함께 공부했던 인연이 있던 유비가 공손찬에게 몸을 맡겨왔었는데, 조운과 유비는 함께 전투를 하며 서로를 알아보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 후, 조운이 형을 이유로 공손찬의 곁을 떠나려고 했을 때,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직감한 유비는 조운을 붙잡고 싶어 하는데, 조운은 이 인연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전합니다.

 

당시 유비 또한 공손찬에게 의탁하고 있었는데, 늘 함께하니 조운과 유비는 심정적으로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조운은 이후 자신의 형이 죽자, 공손찬에게 말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유비는 조운이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손을 맞잡으며 애틋하게 작별했다.

조운이 말했다.

"끝내 덕을 저버리지는 않겠습니다." <조운 별전>

 

유비는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것에 더해, 그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정말 잘 활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후 서로가 다시 만났을 때 유비가 조운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알 수 있으며, 유비의 야망을 위한 준비로 조운의 가장 큰 능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바로 사람을 모으는 능력은밀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능력.

유비가 원소에게로 가자 조운이 업에서 그를 만났다.
유비와 조운은 함께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잤으며, 은밀히 조운을 보내 무리를 모으게 해 수백 명을 얻었는데, 이들이 모두 좌장군 유비의 병사라고 칭했으나 원소는 이를 알지 못했다. <조운 별전>

 

 

홀로 대군 속을 휘젓고 다니다.

처음 조운이라는 얼굴을 보고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는 무엇일까요?

조운의 능력을 평가하는 말들 중 가장 많이 보이는 부분이자, 조운이라는 인물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당양 장판에서 100만 대군 속을 홀로 휘저으며 유비의 아들을 구출해온 일화. 삼국지의 에피소드 중 가장 두근거리는 에피소드죠.

조금은 다른 부분이 있지만 구출해온 일화 자체는 사서에 기록된 실화라는 사실. 그럼 실제 사서에는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을까요?

유비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듣고 조조는 정예 기병 5천을 이끌고 이를 추격했다.
하루 밤낮에 3백여 리를 달려 당양의 장판에 이르렀다.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제갈량, 장비, 조운 등 수십 기를 이끌고 달아났고, 조조는 그의 무리들과 치중을 크게 노획했다 <유비 전>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자, 조운이 이미 북쪽으로 떠났다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유비가 수극을 내던지며 말했다.
"자룡이 나를 버리고 달아났을 리 없다."
얼마 뒤 조운이 도착했다. <조운 별전>


유비가 당양 장판에서 조조에게 추격당해 처자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아나자, 조운이 몸소 어린아이를 품에 안았으니 유선(유비의 아들)이고, 감부인을 보호했으니 즉 유선의 모친이었으며, 이들이 모두 위난을 면할 수 있었다. <조운 전>

 

소설은 아무래도 극적인 요소가 많이 필요하죠. 일단 읽어나가기 위한 원동력은 재미니까요.
그래서 이 기록이 흔히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에서 더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대사와 상황이 조금 바뀝니다.

100만의 대군 속에서 탈출하는 것을 걱정한 미 부인이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조운은 슬퍼할 틈 없이 곧장 조조의 병사를 헤어릴 수 없을 만큼 베고 수하 장수만 50명 넘게 물리치며,
그 모습을 관망하고 있던 조조가 "화살은 쏘지 말고, 저 장수는 반드시 생포해서 데려와라."라고 명합니다.

그 후 조운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유비에게로 돌아왔는데, 이때 유비는 조운이 구출해온 아이를 내팽개치며, 아이는 또 낳을 수 있지만 조운 같은 장수를 다시 얻긴 힘드니, "하마터면 이까짓 아이 때문에 소중한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라고 말하는 것으로 각색되죠.


요약하자면,

  • 5천 → 100만
  • 감부인 보호 → 미부인 자살
  • "화살은 쏘지 말고 반드시 생포해서 데려와라." 대사 추가
  • 수극 → 유선
  • "그럴 리 없다." → "조운을 잃을 뻔했다."

뭔가 과장이 조금 있어서 그렇지, 한 나라의 왕이 정신이고 체면이고 가족이고 다 버리고 도망가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절대로 작은 수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못 본 척해주는 초등학생들의 술래잡기가 아니라 네이비실 특수부대원들의 수색작전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고 느껴지고요.

그리고 사실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올라가면 숫자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그곳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압박감은 비슷할 거라 생각되거든요.
5천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100만이었다 한들 그곳에는 안 뛰어들었을까...

 

하지만 이 일화가 삼국지연의에서 과장되었다는 것과 사서의 기록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것이라서, 조운이 "과대평가되었다, 전부 거품이다."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가장 많이 보이는 두 가지로는

첫째, 실제 기록에도 나오듯 애를 품에 안고 나온 것은 맞다.
감부인도 보호해서 위기를 넘긴 것도 맞다.

하지만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또한 전투를 했다는 부분은 기록 중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무력이 높은 것은 아니다.

 

실제 기록된 역사적 사실로 확실한 내용만 전달한다며, 조운을 삼국지의 조연 취급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아이를 품에 안고 성인 여성 한 명을 보호하면서까지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대군을 뚫은 것은 아니고 전투 없이 무사히 데리고 돌아왔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것을 바탕으로 정황만 보고, 이랬을 거다 저랬을 거다 상상을 펼치는 것은 물론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왕조차 처자식을 버리고 정신없이 도망가는 상황에서, 추격하는 정예병들과 마주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꿰뚫어 봤던 건 '조운' 뿐이어서, 그 길을 따라가 봤더니 마침 그곳에 유선과 감부인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길에도 마주치지 않는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건 비꼬고 폄하하려다가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소설을 쓰게 된 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조자룡 헌 창(칼) 쓰듯 한다.> 정도의 화려한 전투는 불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충돌이 없을 수는 없겠죠.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건 맞는데,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유비가 도망간 방향에서 거꾸로 올라오고 있는 기병을 보고, 작정하고 하루 밤낮 3백 리(약 120km)를 달려온 정예병들이, "네가 지금은 싸울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까 못 본 척 보내줄게."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또한 일분일초 단위로 생사가 결정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 상황에서, 최중요 인물의 구출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눈에 띄는 길로만 가서, 모든 적군을 상대로 돌진하며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목적 자체가 혼자서 정예병을 전부 전멸시키겠다 같은 것이 아닌 유비의 가족을 구출하는 것이니까요.
급박한 상황이지만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확한 위치를 알고 데려오는 것이 아닌 만큼, 찾는 도중에 마주칠 수밖에 없는 적군과 구출 후 돌아갈 때 마주치는 적군과의 전투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거라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특히나 조운처럼 평소 상황을 냉정하고 침착하게 바라보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최대한 수색망을 피하고, 마주친다면 죽이려고 달려드는 상황에서, 그 수가 몇이던지 그 둘을 보호한다는 핸디캡을 가지고, 마주친 적군에게서는 지켜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조운에게는 있었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더 화려하게 기억에 각인시키고 표현하고 싶었던 후세가 받은 감동만큼, 급박한 상황 속 냉정함을 유지하며, 수색망을 피해 최중요 인물을 구출해낸 판단력을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100만이 아닐지라도 5천도 물리적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유비의 아들을 구한 것조차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기록은 있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기록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발언에 힘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의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논리 없는 삐뚤어진 시선을 팩트라는 말로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특별하거나 독창적으로 느껴지고 싶어 하는 '뒤집어서 생각해보기'같은 마음은 알겠지만, 가르칠 입장은 될 수 있어도 가르칠 자격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에요.

역사라는 것은 연구하는 여러 사람에 의해 신빙성이 있다 느껴지는 자료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끼워 맞출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누락된 부분이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대단한 인물의 위대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편협한 시선과 애매한 지식을 가지고 비판이란 말로 트집을 잡으려고 하면, 결국 그 어떤 역사적 사실과 기록도 전부 거짓말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칠 입장이 되고 말에 힘이 있는 사람은 치우치지 않는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급박한 상황 속 자신부터 챙기는 것이 아닌 주군을 향한 충심으로 행동한 것과 망설임 없이 달려간 조운의 담력을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뉴턴-삼국지연의-유비-각색-장면-모음
뉴턴-삼국지-유비

충분히 이럴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조운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인 것 같아요. 모티브가 된 오리지널에서 북쪽으로 떠났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보고였을지, 혼자 살 길 찾아 떠나갔다고 모함하려는 것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고 의심부터 해야 할 상황조차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 유비에게 조운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흘린 아이스크림에 몰린 개미떼 같은 적진에 홀로 들어가서, 왕의 부인과 후계자를 구해왔던 명실상부 조운 인생의 가장 큰 업적.

이 일화로 인해 조운이 과대평가된 부분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슴 뛰게 하는 로망, 그 자체거든요.

 

 

번씨와의 일화

유비가 형주를 얻게 되었을 때, 계양이라는 곳에 기존 태수였던 조범이 항복을 했는데, 유비는 그를 대신하여 조운을 계양 태수로 임명했어요.

조범은 새로운 태수가 된 조운에게 과부가 된 자신의 형수 번씨를 맺어주려고 했습니다. 번씨는 굉장한 미인이었기 때문에 유비의 최측근과 연을 만들어두려는 속셈이었겠죠. 다른 목적이 있어서 조운과 연을 만들어 두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조운은 거절합니다. 영웅호색이라고 하는데, 영웅이라고 모두 호색은 아닌가 봐요.

홀몸이 된 조범의 형수 번씨가 뛰어난 미모였는데, 조범이 그녀를 조운에게 짝지어주려 했다. 조운이 사양하며 말했다.
"우리가 서로 성이 같으니, 그대의 형이 곧 내 형과 같소."
조운은 굳게 사양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그녀를 맞아들이도록 재차 권하는 사람이 있자 조운이 말했다.
"조범이 급박하게 항복했으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소. 천하에 여자가 적지 않소."

그리고는 그녀를 취하지 않았다. 조범이 과연 도주하였으나 조운은 조금도 연루되지 않았다. <조운 별전>

조운은 재차 주변 사람들의 권유도 거절하며 행동을 삼갔는데, 후에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조범이 도주하였지만, 미인이라고 넙죽 받는 게 아닌 신중한 성격 덕분에 조운은 연루되는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삼국지연의에서 창작된 스토리도 있죠.

번씨가 굉장한 미인이지만 홀몸인 이유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춘 남자가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갈 수 없다 하였답니다.
그 조건은 "첫째로 외모가 출중하고 풍채가 당당해야 하며, 둘째는 문무를 겸비하여 천하에 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어야 하고, 셋째로 죽은 남편과 성이 같아야 한다."라고 했다는데... 그냥 조운을 세 문장으로 압축시켜놓은 말이네요.

그러나 생각처럼 조운이 넘어오지 않고 거절하자, 조범은 조운을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거꾸로 사로잡혀 유비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이때 상황을 조용히 듣고 있던 유비는 조운에게 번씨를 받아주라고 권하지만, 조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천하에 여자는 적지 않고, 명예를 손상할까 두려울 뿐 처자식이 없는 게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일화

그다음 이어서 인간관계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나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처신하는 조운의 신중한 성격과 처세에 관한 다른 한 가지 일화도 나오는데,

 

그 이전에 하후돈과 박망에서 싸워 하후란을 사로잡았었는데, 하후란은 조운의 고향 사람으로 서로 아는 사이였다.
조운은 유비에게 그를 살려주도록 부탁하고, 하후란이 법률이 밝다고 추천하였으나 조운은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조운 별전>

자신과 아는 사이이고 주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했지만, 일단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먼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중하고 사려 깊게 관리하는 사람. 자신 주변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렇게 투명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손상향과의 일화

흔히 손상향으로 알려져 있는 손권의 여동생 손부인은 실제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기록에는 손부인이라고만 나와있는데, 그녀는 재주가 있고 굳세고 사나워서 여러 오라버니들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항상 무장한 시녀 백여 명을 데리고 다녔는데, 유비가 매번 만나러 갈 때마다 두려워했었다고 해요.
이런 유비조차 어쩌지 못하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던 손부인을, 유비는 조운에게 맡겨 장악하게 합니다.

조운이 깨끗하고 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유비가 생각하기에 항상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그것을 실행시킬 수 있는 인물은 조운뿐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또한 집안일까지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털어놓을 수 있고,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네요.

유비의 부인인 손부인은 손권의 여동생으로 교만하고 횡포하여 오나라의 관리와 병사들을 여럿 거느리고 거침없이 법을 어겼다.

유비는 조운이 엄중하니 필시 이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 여겨 특별히 내부의 일을 맡겨 관리하게 했다. <조운 별전>

그런데 손부인은 오나라로 돌아가려 할 때, 자신이 낳은 아들도 아닌 유비의 아들을 데리고 돌아가려고 하는데요.
유비는 마음에 안 들어도 아이를 많이 좋아했던 건지, 동맹국의 하나뿐인 후계자를 데려다가 엄청난 인질을 하나 잡아두겠다는 속셈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을 조운이 다시 한번 구출해오는 공을 세웁니다.

손권은 유비가 서쪽을 정벌한다는 말을 듣고 배들을 대거 보내 여동생을 영접하게 했는데, 손부인이 은밀히 유선을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가려 하니, 조운이 장비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강을 가로막고는 유선을 구해 돌아왔다. <조운 별전>

 

 

군지휘관으로서의 활동

조운을 평가절하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 조운은 유비의 호위무사, 즉 유비의 집이나 지키는 경호원 정도의 위치이기 때문에 지휘관으로써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운은 사서의 첫 등장부터 기마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등장했고, 중간중간 군사 작전을 위하여 본대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행동했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유비가 가맹에서 환군해 유장을 공격하고 제갈량을 불렀다.
제갈량이 조운과 장비 등을 이끌고 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며 군현들을 평정했다.
강주에 도착하자 조운을 나누어 보내 외수를 따라 강양으로 올라가게 하니, 성도에서 제갈량과 합류했다. <조운 전>

 

 

익군 장군

성도가 평정된 뒤, 조운을 익군 장군으로 삼았다. <조운 전>

익주의 중심지인 성도를 장악하고 나서, 유비는 조운에게 익군 장군이라는 직책을 맡기게 됩니다.
이 당시 같이 오호대장군으로 불리는 인물들은 각각 전 장군 '관우', 우장군 '장비', 좌장군 '마초', 후장군 '황충'으로 사방 장군이었습니다.


근데 조운이 받았던 이 익군 장군이라는 직책은 후대에도 잘 쓰이지 않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애매해서,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는 단순 임시직이기 때문에, 오호대장군이라는 것은 삼국지연의의 창작일 뿐이며, 조운은 특별한 능력이 없어서 여기에 같이 언급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일부러 직책을 만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유비 생전 만든 단 두 개의 장군직 중 하나는 익군 장군으로 조운, 하나는 군사 장군으로 제갈량이었습니다.
유비가 특별히 만든 자리로 제갈량과 단 둘이 받았다는 것. 그리고 유비가 그간 조운에게 맡겼던 일들. 오랫동안 곁을 지킨 사람이기 때문에 적당히 만들어서 툭 던져준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유비에게 조운은, 언제나 모든 걸 깔끔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최후의 보루로써 신뢰받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품성이 돋보이는 정치적인 식견

익주가 평정된 후, 이제껏 고생했던 신하들에게 땅과 집을 나누어주자는 회의가 열렸어요. 대다수가 내심 받을만하다 여겨서 기대도 하고 있었는지, 조용히 동의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때 조운만이 혼자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라고 나섭니다.

익주가 평정된 뒤 당시 사람들이 의논하여 성도의 집과 성 바깥의 과수원, 뽕밭을 제장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했다.
조운이 이를 반대하며 말했다.

"한무제가 집을 하사하자 곽거병은 흉노를 아직 멸하지 못했으니 집이 쓸모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나라의 적이 흉노만이 아니니 아직 안락을 구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천하가 모두 평정될 때를 기다려 각자 고향으로 되돌아가 본래 땅에서 농사짓는 것이 마땅합니다.
익주의 백성들은 처음 전란을 겪었으니, 논밭과 집들을 모두 되돌려주고, 아무런 탈 없이 평안히 지내며 생업에 복귀하게 한 뒤에, 부역을 부과하고 세금을 거둔다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유비가 이 말을 따랐다. <조운 별전>

주변에서는 '이제 고생이 빛을 보는데...'라며 불만을 가졌을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조운은 자신도 충분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유비는 조운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무장이 정치적인 자리에서 발언을 했다는 것, 그리고 대세와 정면으로 반대됨에도 그 발언에 힘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식견을 가지고 내뱉은 발언이었다는 것이겠죠.
뛰어난 정치감각과 청렴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눈앞의 나의 이익만을 위한 긍정이나 침묵이 아닌, 대세와 충돌하더라도 소신껏 말할 수 있는 모습은 정치인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 아닐까 싶네요.

 

 

호위 장군

'조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유비의 최측근에서 그와 그의 가족을 지켜줬던 수호신이자 은빛 갑옷에 하얀 전포를 두르고 백마에 걸터앉아 긴 창을 늘어뜨린 모습, 호위 장군.

이 특별해 보이는 별명은 촉나라와 위나라의 전투 중 한중 공방전 때의 일화에서 나온 건데, 조운의 무력이 전혀 과대평가된 것이 아니라는 일화가 다시 나옵니다.

하후연이 패하자 조조가 와서 한중 땅을 다투었고, 북산 아래에 군량을 운반하여 수천만 포대에 달했다.
황충이 이를 빼앗을 수 있다고 하였고, 조운의 군대가 황충을 수행해 군량을 빼앗으려 했다.
황충이 기한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자, 조운이 수십 기를 거느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진영을 나와 황충을 마중하며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 때마침 조조의 대병력이 출전하니, 조운이 조조의 선봉 부대에 의해 공격받아 싸우게 되었다.

하지만 조조의 대군이 도착하여 형세가 핍박해지자, 적진에 돌진하고 한편으론 싸우며 한편으론 물러섰다.
조조 군의 선봉부대가 패했다가 후방부대와 다시 합치니, 조운이 적을 무너뜨리고는 진영으로 되돌아왔으나, 장수 장저가 상처를 입자 조운이 다시 말을 달려 적진으로 되돌아가 장저를 구출해서 돌아왔다. <조운 별전>

바로 내빼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조운은 오히려 돌진해서 싸우는 선택을 합니다. 조조 군의 대형을 헤집어놓고, 정신 차릴만하면 또 공격하면서 말이죠. 고작 수십 기로 조조의 선봉부대를 주춤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부대와 합쳐진 후방에 있는 대군의 포위망을 뚫고 되돌아오는 돌파력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더 대단한 것은 그렇게 진영으로 되돌아왔지만, 아군이 상처를 입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구출하기 위해, 다시 적진으로 돌진해서 아군까지 구출해서 돌아옵니다. 조운의 담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장익이 문을 닫고 막아 지키려 하였으나, 조운이 문을 활짝 열고는 깃발을 내리고 북치는 것을 멈추었다.
조조 군은 혹시나 조운이 복병을 두었을까 의심하여 물러났다.

조운이 하늘을 뒤흔들 듯 북을 울리며 뒤에서 조조 군에게 융노를 쏘아대니, 조조 군이 놀라고 어지러워져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았고 한수에 떨어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조운 별전>

조운은 뒤따라온 조조의 대군을 상대로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는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서 조조 군이 복병을 의심하여 퇴각하려는 순간, 뒤에서 화살비를 쏘아 부어 박살을 내놓습니다. 36계 중 하나인 공성계를 멋지게 성공시키는 장면이죠.

다음날 아침 유비가 조운의 진영으로 와서 전날 싸운 곳을 둘러보며 말하는데, "자룡은 온몸이 담 덩어리로다!".
그리고 군중에서는 조운을 일컬어 호위 장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래된 것이 [子龍一身都是膽, 虎威將軍] 자룡일신도시담, 호위 장군.
온몸이 담 덩어리로 이루어진 호랑이의 위세를 가진 장군.

호위 장군이라 불렸기 때문에 경호원 같은 호위무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유비의 곁을 철통같이 보호하고 지켰던 것도 맞지만 호위 장군의 호위는 범의 위세라는 뜻의 호위입니다.

 

한자도 다르고 애초에 조운의 호위 임무는 허저 같은 인물처럼 조조 곁에서 떨어질 일이 없었던 인물과는 달리, 유비 곁에서 떨어져 폭넓게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유비의 신변을 경호한 것은 겸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유래도 그렇듯, 정식 관직명인 것도 아니고 별명일 뿐이고요.

 

 

통찰력을 보여주는 전략적 시야

조운이 흐름을 파악하는 전략적 시야를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통찰력을 보여준 일화가 있습니다.
관우의 죽음으로 복수에 눈이 돌아간 유비가 오나라를 공격하려는 때, 조운은 분노한 주군에게도 단호하게 직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손권이 형주를 습격하자 유비가 대로하여 손권을 공격하려 했다.

조운이 간언 하며 말했다.
"나라의 적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니며, 게다가 먼저 위나라를 멸하면 오나라는 저절로 복종해올 것입니다.
조조는 비록 죽었으나 그의 아들인 조비가 찬탈했으니, 마땅히 민심을 따라 조속히 위나라를 도모해야 합니다.
위나라를 내버려 두고 오나라와 먼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조운 별전>

하지만 유비는 이 말을 듣지 않고, 조운을 빼놓고 오나라를 공격하여 대패하게 됩니다. 이 전투로 인해 수많은 촉나라의 인재가 죽고, 촉나라가 기울게 되는 시발점이 됩니다.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

마속이 산을 타서 말아먹었다고 알려진 유명한 제갈량의 첫 북벌 당시에 조운도 출전했어요.
이때 조운은 제갈량과 동행한 것이 아니라 별도의 부대를 이끌고 다른 길로 갔습니다.

228년, 제갈량이 출군 하여 야곡도를 거친다고 소문을 내자, 조진이 대군을 보내 이를 맞아들였다.

제갈량은 조운과 등지에게 가서 막게 하고 자신은 기산을 공격했다.

조운, 등지의 군사들은 약하고 적은 강하여 기곡에서 불리했으나, 군사들을 거두어 굳게 지켰으므로 대패에 이르지는 않았다. <조운 전>

조운의 역할은 미끼가 되어 위나라의 주력 부대를 상대로 발목을 잡아두는 역할이었는데요.

 

그 당시 조운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미끼를 물게 할 셈이었던 것도 있겠지만, 제갈량이 그 능력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양동작전으로 약한 병사들을 이끌고 적을 유인하는 일은 지휘관으로서 능력이 부족했다면 맡길 수 없는 핵심 임무였기 때문입니다.

 

기록에도 조운의 군사는 약하고 적은 강하다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속이기 위한 부대이다 보니 조운의 군사는 수가 얼마가 되던 약할 수밖에 없고, 위나라는 주력 부대가 속아서 온 것이다 보니 강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 불리한 상태로도 충분히 임무를 완수하고 있었지만, 결국 제갈량의 인사 실책으로 인해 퇴각하게 됩니다.


근데 가정에 있던 군과는 다르게 조운이 지휘했던 군은 큰 피해가 없었어요. 이것을 신기하게 여긴 제갈량이 조운과 같이 움직였던 장수에게 물어보니,

제갈량이 말했다. "가정의 군이 퇴각할 때는 병장들을 서로 수습하지 못했는데, 기곡군이 퇴각할 때는 병장이 처음처럼 잃은 바가 없으니 어찌 된 까닭이오?"

등지가 말했다. "조운이 몸소 뒤를 끊고 군수물자와 집기조차 함부로 버린 일이 없으니 병장들을 잃을 까닭이 없습니다." <조운 별전>

패전은 맞붙어서 당하는 손실보다 퇴각 시에 손실이 훨씬 많다고 하여, 손실을 최소화하여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최선인데, 조운은 퇴각하면서 자신이 직접 최후방에 있는 것으로써 이것을 최대한 이루어냈죠. 덕분에 앞서 퇴각하던 군사들이 당황하지 않고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1차 북벌에서 퇴각한 후, 공정하기로 유명한 제갈량조차 조운의 공을 생각하여 하사품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운은 제갈량과 더불어 최고 사령관의 책임을 같이 떠안으며 말합니다.

조운의 부대에 여유분의 비단이 있어 제갈량이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니 조운이 말했다.
"군사에 이로움이 없었는데 어찌 하사품이 있을 수 있습니까? 청컨대 그 물건들은 모두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10월이 되면 겨울 하사품으로 삼으십시오."
제갈량이 이를 매우 옳게 여겼다. <조운 별전>

 

 

진정한 국가의 대들보 같은 장수

229년, 조운의 죽음을 기록하며 평가합니다.

황충, 조운은 굳세고 사납고 씩씩하고 용맹하여 아울러 조아(발톱과 어금니. 용맹한 무장을 비유)가 되었으니, 관영 그리고 하후 영과 같다. <조운 전>

조운이 죽고 받은 시호는 순평후. 조운의 용맹함은 이미 한나라 개국 공신 서열 8위와 9위에 비유될 정도로, 사서에서부터 가장 인정받는 부분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시호는 특별한만큼 그 사람의 공적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정해지는데, 은 자비롭고 온화한 성품에 대한 찬양, 은 일처리 등에 있어서의 공정함을 뜻하는 것이니, 조운이 어떤 인물이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운은 유비와 제갈량에게 따돌림을 받았다'라던지, '촉나라에서는 조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전혀 맞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촉나라의 영구결번으로 시호를 받은 인물은 유비 때 단 한 명, 그리고 유선 때 11명뿐이기 때문이죠. 나라를 통틀어 12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위인이, 따돌림을 당했거나 미움을 받았을 리 없습니다.

강직한 성격이지만 부드럽고 유연하게 처신을 했던 인물이었던 것을 순평후라는 시호에서 알 수 있으니까요.

 

쓸데없는 오해가 없도록 말과 행동을 삼가는 처세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향한 충심,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히 상황을 바라보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담력과 그에 걸맞은 실력, 뛰어난 전략적 통찰력과 정치적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잘못된 행동이 보이면 상대가 누구든지 직설적으로 말하며, 공과 사가 분명해 윗사람과도 아랫사람과도 충돌하는 일이 없었고, 재물과 여자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 본인의 사리사욕보다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우선하는 사람.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죽음을 들은 제갈량은 이런 말을 합니다.
"자룡이 죽은 것은 곧 국가의 대들보 하나를 잃음이요, 나로서는 팔 하나를 잃음과 같도다!"

 

진정 국가의 대들보 같은 장수, 조운.

 

 

삼국지, 오호대장군

삼국지, 오자양장

삼국지, 강동십이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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