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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의 오답노트/삼국지

삼국지, 강동십이호신

by ボス 2021. 2. 27.

오나라의 수호신, 강동십이호신

오나라의 강동십이호신의 경우, 상대적으로 모르는 사람도 많고, 2차 창작물에서의 비중도 작은 편입니다.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
그럼 이들은 누구이고, 언제 사망했으며, 사서에서는 어떠한 평가를 받았을까요?

 

 

강동의 호랑이

정보는 성품이 베풀기를 좋아하고 사대부들을 아꼈다고 합니다.
그는 참모와 돌격대장을 모두 수행해냈던 걸로 보이는데, 적벽대전 당시 주유와 함께 조조를 격파하고, 남군에서 전투에서는 조인을 패주 시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합니다.

 

 

황개는 적벽대전에서 그 유명한 화공(火攻)을 제안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당시, 불에 타 죽거나 익사한 병사와 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하니, 적벽대전에서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운 것 황개일 것입니다.

 

 

한당은 황개, 정보와 함께 손 씨 가문 3대를 보좌한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숙하고, 힘이 세어 손견에게 총애를 받고, 수차례 위험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적을 무너뜨리고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장흠은 주태와 함께 손권에게로 나아갔는데, 꾸준한 도적 토벌로 실적을 쌓아갔습니다.

그는 특히 인성이 좋았는데, 공과사를 구분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사이가 나빴던 서성의 좋은 점을 칭찬하며 추천했다고 합니다. 또한 손권이 그의 검소한 모습에 놀라 재물을 내려줄 정도로, 사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주태는 손권이 부주의하게 만용을 부렸을 때, 도적 무리에 의해 습격을 받고 손권을 지키다가 몸에 12개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온몸에 상처를 입으며 주군의 동생을 지켜낸 충심. 이 덕분에 손권은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 이후로도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진무는 스스로 손책을 찾아가 그의 부하가 되었는데, 손책이 여강 태수 유훈을 격파하고 그중 정예병을 묶어 진무에게 감독하게 했습니다.

손권이 합비를 공격했을 때 분전 중에 사망, 그 후 손권이 애첩을 순장시키고 직접 장례에 참석할 정도로 아꼈습니다. 

 

 

동습은 손책이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할 정도로, 풍채가 좋았습니다.

그는 타고난 돌격대장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손권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 황조를 공격할 때, 황조가 배 두 개를 묶어놓고 화살을 쏘며 버티는 바람에, 피해만 커져갔습니다.

이때 동습은 능통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 직접 내부로 침입하여, 밧줄을 끊어버리고 황조를 토벌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웁니다.

 

 

감녕은 주유와 여몽이 모두 추천할 정도로 능력이 있고, 손권이 옛 신하와 같이 특별대우를 해 줄 정도로 아꼈습니다.

손권이 "맹덕에겐 장료가 있지만, 나에겐 흥패가 있으니, 서로 상대해볼 만하다!"라고 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장료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던 손권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에서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능통은 동습과 마찬가지로 전투에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앞장서서 돌격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특히 합비에서는 오나라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장료를 목숨 걸고 막아서며 손권을 지켜냈습니다.

손권의 능통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능통이 죽었을 때 능통의 아이들을 거두어 "얘들이 내 호랑이 새끼요."라고 말하며, 궁에서 기를 정도였습니다.

 

 

서성은 조비가 오나라를 직접 공격하러 왔을 때, 계획을 세워 울타리를 쌓고 임시 누각을 설치했는데, 여러 장수들과 손권마저도 믿지 않고 쓸데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서성은 휘둘리지 않고 굳건하게 울타리를 세워나갔습니다.

조비가 도착하자 울타리를 보고 놀라며, "위나라에 비록 무장한 기병이 많아도 소용이 없구나." 하고 퇴각했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남다른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장은 공을 세우는 것을 좋아했고, 통솔하는 군대는 수천 명에 불과했지만 이르는 곳마다 언제나 만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부하들도 뛰어났었는데 번성에서는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까지 사로잡았고, 
이릉대전에서는 풍습을 베고 죽이거나 부상을 당하게 한 자가 매우 많았다고 하니, 그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정봉은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매번 적 장수를 베고 적의 깃발을 뽑았다는 말로 시작될 정도로, 용맹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말에 타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수백 명의 머리를 베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무력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안타깝네요.

 

 

 

사망 및 평가

이들의 사망연도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 많지만 대략적인 순서는,

정보→동습→황개, 진무, 감녕(215년)→능통(217년)→장흠(219년)→서성, 주태(황무 연간, 222~229년)→한당(227년)→반장(234년)→정봉(271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사서에서는, 이 장수들은 모두 강동의 용맹한 신하였으며, 손 씨에게 두터운 대우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오호대장군

삼국지, 오자양장

 

삼국지 인물 실제 일대기, 호부견자 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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