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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의 오답노트/삼국지

삼국지 인물 실제 일대기, 실패한 등산가 마속

by ボス 2021. 3. 5.

읍참마속의 주인공, 마속은 누구일까?

등산 한 번으로 1800년 넘게 연구되고, 아직도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에 확실한 답이 없는 인물, 마속.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두르고 있었을 때, 누구도 생각 못할 행동으로 촉나라 최고의 똥별이 되어버린 마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고사성어를 남겼으니, 어찌 보면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는 인물, 마속.

 

 

마속은 '백미'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 마량의 동생으로, 다섯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다섯 형제 중 마량과 마속을 제외한 형제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들은 다섯 모두 재능이 뛰어나서 마씨 가문의 다섯 형제, 즉 마가오상이라 불렸다고 하니 마속의 다른 형들도 아마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속은 젊은 나이에 유비를 따라 촉나라에 들어갔는데, 재주가 뛰어나고 군사 전략 논하기를 좋아해서 제갈량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마속은 제갈량이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던 마량의 동생이기 때문에, 특별히 배려해줬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유비는 마속을 좋게 보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죽기 전 제갈량에게 남긴 유언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속은 재주와 기량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군사 계책을 논하기를 좋아하니, 승상 제갈량이 더욱 그의 기량을 빼어나게 여겼다.

유비가 임종 때 제갈량에게 이르길,

"마속은 말이 그 실제를 과장하니, 크게 기용할 수 없소. 그대가 이를 잘 살피시오."
라고 하였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여, 마속을 참군으로 삼고, 매양 불러서 얘기하기를 밤낮으로 했다. <마속전>

주변을 둘러보면, 허황된 소리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죠. 나름의 독특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일지는 모르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아서 말도 안 되게 들리는 말들.

아마도 유비는 마속을 그런 '꿈속에 사는 녀석'으로 본 것 같아요.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극 현실주의자가 되었을 유비가 보기에, 실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놓는 아이디어는 허황된 헛소리로 보일 수 있었겠죠.

유비의 눈에 그런 위태로운 마속을 이제 촉나라를 이끌어갈 리더가 될 제갈량이 심각한 수준으로 아꼈다는 게 느껴집니다. 오죽하면 빈 깡통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할 말이 엄청나게 많을 죽기 전 그 짧은 시간에, 제갈량이 일국의 황제가 했던 말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라면, 그래도 마속의 재주 자체는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번뜩이는 참신함으로 자신을 보완해줄 수 있었던 마속이 참 예뻐 보였던 것 같습니다. 실현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허황된 헛소리일 수도 있지만, 제갈량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칠종칠금의 유래가 된 남만 정벌에서 내놓은 '마음을 복종시키는 계책'도 마속의 것이었습니다.

 

225년, 제갈량이 남만 정벌에 나서자, 마속이 전송하였다.

제갈량이 말하길
"비록 함께 모의한 지 오래되었으나, 지금이라도 좋은 계책이 있겠소?"라고 하니,

마속이 대답하길
"남만은 그 멀고 험한 것을 믿고서 불복한 지 오래되어서, 오늘 격파하더라도 내일 다시 반역할 것입니다.
지금 공께서 바야흐로 온 나라의 힘을 기울여 북벌을 하느라 강적을 맡고 계시니, 저들은 관리들이 안으로 텅 빌 것을 알고서, 그 반역함이 또한 신속할 것입니다.
만약 저 무리들을 다 없애 후환을 없애고자 한다면, 그것은 어진 자의 마음이 아니며, 또한 빠르게 할 수도 없습니다.
무릇 용병의 도에는 마음을 공격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고 성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으로 삼으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을 상책으로 치고 병사로 싸우는 것을 하책으로 여기니, 원컨대 공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복종시키십시오."
라고 했다. 제갈량이 그 계책을 받아들여, 맹획을 사면하고 남방을 복종시켰다.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남방은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양양기>

이런 실현 가능성이 낮은 헛소리도, 실행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참신한 아이디어가 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의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갈량은 특히 더 아끼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후 1차 북벌까지는 특별한 기록이 없는데, 제갈량이 아무것도 안 하는 마속을 특별히 아꼈을 리는 없고, 아마 행정과 참모 등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제갈량은 유비의 유언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갈량의 필생의 도전인 1차 북벌부터 마속의 기록은 다시 나오는데, 이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가정의 길목을 지키는 임무의 선봉장으로 마속을 선택했습니다.

 

228년, 제갈량이 군대를 출정시켜 기산으로 향했는데 당시 노련한 장수인 위연, 오의 등이 있어 주변에서는 마땅히 그들을 선봉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으나, 제갈량은 그 의견을 거스르고 마속을 발탁하여 대군을 통솔하여 선두에 서게 하였다. <마속전>

하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무시하고 멀쩡한 길목 대신 산 위로 올라가는 선택을 합니다.
왕평이 끝까지 제갈량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며 말렸지만, 마속은 그마저도 무시했고 위나라의 명장 장합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산 위로 올라간 마속은 포위되어 물줄기와 보급로가 끊겨 대부분이 말라죽었고, 나머지는 위나라 군과의 전투에서 전멸합니다. 생존자는 거의 없었고 마속은 몇몇 부관들과 함께 도망쳤습니다.

 

장합은 마속과 가정에서 맞붙었다. 마속은 남산에 의지했고, 내려와 성을 점거하지 않았다.
장합은 물길을 끊고 들이쳐 마속을 대파했다. <장합전>

마속은 위나라의 장수 장합과 가정에서 싸웠으나, 장합에게 격파되고 병사들은 흩어졌다.
제갈량은 진군하려 해도 거점이 될 곳이 없어 군대를 퇴각시켜 한중으로 돌아왔다.
마속은 하옥되어 죽었다. 제갈량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마량이 죽을 때 나이는 36세였고, 마속은 39세였다. <마속전>

결정적으로 이때 제갈량 곁에는 인재가 부족했다는 것도 있었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자신 있게 막을 올렸던 1차 북벌은 허망하게 끝나고 맙니다.

 

 

 

마속은 참수당한 것이 아니다?

마속이 참수된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명공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보아주시고, 저도 명공을 아버지처럼 보았으니, 원컨대 여기에서 평생의 교류가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죽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양양기>

마속전에는 마속이 하옥되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양양기를 보면, 마속이 제갈량에게 전하는 뜻을 굳이 말이 아닌 글로 남긴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제갈량과 직접적으로 만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읍참마속의 고사처럼 참수되었다는 명확한 기록도 없는데, 정황상 참수형이 자연스러운 상황이고 삼국지연의에서 그렇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속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건 확실하고, 제갈량에게 자신의 자식을 부탁하며 마음을 전하고, 39세에 생을 마감합니다.

마속이 처형당하고 십만의 병사들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국가의 대업을 좌절시킨 큰 죄를 짓고도 슬퍼해주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으로 보아 인품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읍참마속에 대한 후세의 평가 및 개인적인 생각

습착치는 인재가 부족한 약소국에서, 재능 있는 사람보다 법을 중시한 건 웃긴 일이라고 제갈량을 비판했습니다.

일단 법을 무너뜨리더라도 재능을 펼치게 만들어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다지고, 그 후에 법을 제대로 세워도 된다는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어려운 건, 법의
위엄이 서지 않은 곳에서 밑의 사람들이 치열하게 행동 할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운전면허가 생각나네요. 운전면허는 취득 후 1~2년 차가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데, 그때 자신감이 가장 많이 생길 때이기 때문이죠. 어느 정도 숙련이 됐다고 착각하는 그 순간, 자신의 수준을 알지 못하고 방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속은 병법에 능했다고 하지만, 자신 있는 만큼 기초는 소홀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마속의 패전은 유비조차 두려워했던 끝을 알 수 없는 장수를 앞에 두고,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주변의 의견을 묵살하고, 외골수로 자신의 고집만 지키려던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워해야 할 상대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있을 수 있는 자세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커다란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책 없이 부딪힐 생각으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것이라면, 그로 인한 피해는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도 망칠 수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번 이기고 한 번 질 것이며,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위태롭다. <손자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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